사과와 오렌지 '폴 세잔이 표현한 물체의 본질'

안녕하세요 회화리뷰어 최고씨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그림은 폴 세잔의 정물화(사과) 입니다.

 

 세잔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선구자들을 세잔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에 세잔이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합니다. 

 

 세잔은 색채의 변조, 시점의 분할, 고전적 원근법의 탈피를 통해 과거의 통념들을 깨부수고, 현대 미술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여겨집니다.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싶소"

 

 

 

사과는 세잔에게 화가로써 전성기를 주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과가 아닌 세잔의 정물화가 전성기를 주었지만, 수많은 정물화 중에서도 사과는 그의 그림에 특히 많이 등장합니다.

 

 

 

마티스는 세잔을 회화의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피카소는 세잔의 위작을 팔려고 하는 상인에게 호통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세잔을 모르는 줄 아시오? 세잔은 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스승이란 말이오! 내가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기만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오, 난 그것들을 연구하느라 몇년을 보냈소" 

 

 브라크는 "마침내 세잔은 회화에서 숙련된 솜씨에 대한 견해를 뒤엎었습니다. 혁명입니다. 세잔을 가장 위대한 화가 대열에 올려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라며 세잔을 칭송했습니다. 

 

 이렇게 야수주의, 입체파 화가들의 칭송을 받는 세잔의 정물화.  그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던 세잔의 사과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사과

 사과가 세잔의 작품에 첫 등장하게 된 것은 신화를 소재로한 그림에서 입니다. 이 그림에서 목동이 요정에게 사과를 바치는데, 세잔의 회화에서 사과의 위치는 하나의 일화로 쓰이는 소재는 아닙니다.

 

 세잔은 그림을 시작하면서 일찍이 자신이 상징이나 도덕을 형상화하는 일반적인 화가로 여겨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주의적인 표현기법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여 그의 정물화에는 묘하게 이질감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본듯적 있는듯한 착각을 주며 그림속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세잔은 그림 한 점을 그리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백번의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썩는 복숭아, 살구보다 사과, 오렌지, 레몬등 겉이 단단하고 잘 상하지 않는 과일을 선호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과와 오렌지

 그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사과와 오렌지는 흡사 산사태라도 벌어진듯, 무질서하게 식탁보와 오렌지, 사과가 널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일과 다른 오브제들이 얽히고 섥혀있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함과 익숙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매끈한 사과와 우둘투둘한 오렌지, 그리고 새하얀천 화려한 식탁보, 접시와 술단지 등 수많은 오브제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면서 이질적입니다. 

 

 따듯함과 차가움, 균형과 추락, 독특한 원근법, 비어있음과 차있음, 어두움과 밝음을 골고르 작품안에 담아냈습니다. 

 

 세잔은 서있는 정물화에서 역동적이고 전체적인 시점을 형상화하여 입체주의 회화의 대담함을 그림에서 시작했습니다. 

 

 소실점으로 향하는 선은 여러개로, 각각 직각으로 교차합니다. 이 선들은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입체감을 주었으며, 무너져 있는 과일더미의 불안정함과 테이블, 그리고 식탁보와 흰천을 활용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택해,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균형을 잃게 했습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세잔의 사과는 세잔의 감수성과 감각을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화가의 전성기에 정물화를 선택한 세잔은 단순한 시각, 현상적 사실에서 다시 근본적인 물체의 본질, 내적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세잔의 시각

 

세잔은 시각이 순수하길 바랬습니다. 기존의 것을 탈피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의 눈처럼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잔은 유채색의 형태로 소재를 지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탈피하기 시작했으며 감각적인 부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전통적인 시각에서 탈피하기 위해 기존의 회화가 가지고 있던 원근법 공식 (균일한 공간, 하나의 시점, 중앙의 수평선 등)을 버렸습니다. 
 
그의 말년 정물화에서는 비례의 파괴, 공간의 평면화, 근경과 원경사이를 넘나드는 사물의 표현으로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물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잔의 그림을 보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정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며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세잔의 호언장담은 성공해습니다. 그가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부터 세잔의 화풍은 미술계에서 볼 수 없었던 것 이었으며, 그의 혁명적인 그림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세잔의 나이 60세가 넘어서야 시대가 그의 작품을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날의 상처 때문인지 세잔은 평론가나 기자들의 칭찬과 비난을 의도적으로 멀리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간의 평에 자신의 그림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단 하나의 신념만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장 훌륭한 판단 기준은 안목이다. 안목 있는 이는 드물다. 미술은 극히 제한된 사람에게만 호소하는 예술이다."
 

오늘은 폴 세잔의 사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만약 세잔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고전적인 정형화된 그림만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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