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좋아하세요?

해찰하지말고 다녀라. 


 어릴적부터 시골에서 자주 듣던 이야기다. 평소에 산책을 좋아하던 나는 어릴적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산책이라고 명하고 다니던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에와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것이 산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찰하다. 해찰은 쓸데없는 다른 짓을 하다 라는 순 우리말인데 산책이 해찰 아닌가. 


 어릴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나는 괜히 길을 돌아가는 것을 즐겼다. 목적지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성당을 돌아서 간다던가, 재개발이 한창인 미로같은 아파트 건설현장 사이를 지나서 간다던가 했다. 그래서 항상 식사시간에 늦었고 주의가 산만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시절에는 모험이니 탐험이니 하는 것들에 들떠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건 아닌가 하고 생각도 든다. 지금은 산책이라는 핑계로 해찰하고 다닌다. 


 걷다보면 많은 생각이 들기도하고 정리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어제는 걷다가 노란 점멸 등이 엄청 샛노랗다 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 점멸등 아래 라이트를 키고 있는 차의 등은 노란등보다 더 밝은 노란색이었다. 문득 하늘은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쪽빛을 내고 있었다. 뒤에서 지나오는 차와 가로등 빛으로 그림자는 한없이 흔들리며 나를 어지럽혔다. 지나간 차 뒤로 빨간 후미등이 따라가고 있었다.- 


 이 내용을 걸으면서 아 일기에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사실 막상 쓰려고 보니 제법 시적이라 시를 한편 끄적여 볼까 하다가. 별 내용이 없는 단순한 묘사라 시로는 적합하지 않아 그냥 걷기의 장점에 대해 쓰는데 소모하기로 했다. 


 주로 혼자 걸으면서 이런 생각들을 한다. 이상한 생각들, 때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었는지, 무슨 일을 할지 등을 상상해보면서 걷는 것 또한 재미있다. 


 하여간 사고하는 것 자체를 즐기기에 산책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하면 안되는 생각들이 있어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걷는다. 생각하면 슬프고 복잡하고 답이 없는 일들. 그런 일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시기의 걷기는 여유시간이 없도록 빠르게 걷는다.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앞서 설명했던 옷갖 장점들이 다 날아가버리는 걷기다. 숨소리와 다리의 통증만 있는 걷기. 아무런 생각을 안 할수록 좋다. 


 그렇게 생각없이 걷다가 집에 도착하면 식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 그냥 샤워하고 홀린듯이 잠에 든다. 요 몇일간의 걷기는 그랬다. 


 일주일 내내 두어정거장 전에 내려서 1시간 가량 걸었는데 추운날에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상관없이 걸었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걷는 것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지난주 목요일에 걸으면서 문득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떤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좀 더 걷다 보면 다시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일기의 결론은 결국 걷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는 것.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