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지하철 2호선 에서 벌어진 일'

지하철, 오늘따라 사람이 미어터진다. 

 

어벤져스 촬영하나보다. 오늘따라 사람들의 어깨는 크리스 에반스의 그것이다. 

 

3호선 환승에 20분이 걸렸다.

아 이번열차도 놓칠것 같다.

 

바로 앞에 서 계시던 지긋하게 나이드신 어르신이 억지로 몸을 구겨넣어 지하철 출입문 상단 틀을 가느다란 팔로 붙잡고 버티신다. 

 

90년대 지하철 푸쉬맨을 업으로 하셨음이 틀림없다. 정정도 하셔라. 

 

그리고 -출입문이 닫힙니다- 하고 성우의 예쁜 목소리가 들린다. 

 

어르신은 앞에 다음차를 타기위해 서있는 나를 보고는 

"뭘 쳐다봐 ㅆㅂ놈아"


하고 점점 좁아지는 출입문에 입만 내밀고 욕하신다. 나는 평소 시선으로 오해를 많이 산 경험이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잠시 뒤 다급한 목소리로 방송이 나온다. 

이번엔 남자다. 


"다음열차 이용해주세요, 다음열차 이용해주세요." 

 

다급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이 '푸쉬쉬' 소리와 함께 열렸다. 

 

어르신도 푸쉬쉬 소리와 함께 실수로 새어나온 방귀마냥 문밖으로 나왔다. 

욕설과 함께 문간에서 버티던 정정함도 나와버린듯 하다.

 

나와 어르신은 소개팅에서 맘에 안드는 상대를 만난것 마냥 서로 안절부절 못했다. 

그리고 어르신은 황급히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다음열차 이용해주세요, 다음열차 이용해주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지하철 문이 비웃듯 푸쉬쉭 소리를 낸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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