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 선동열, '아 동열이도 없고'

 나는 선동열 감독의 선수시절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도 어린시절 아버지가 야구를 한창 보던 때에는 그의 전성기를 봤으리라, 그의 대단함을 알게 된건 이 블로그에 야구관련 포스팅을 하기 시작하면서다. 한국야구의 투수기록에 그 이름 세글자가 빠지는 곳이 없었다. 영화 퍼펙트게임, 스카우트 같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전성기를 알 수 있었다. 

 

 

 감독직을 수행하던 시절에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자신이 천재형 투수였기 때문에 투수들을 혹사한다, 못 던지는걸 이해하지 못한다 등과 같은 천재 - 꼰대의 이미지가 가득했다. 내가 응원했던 팀 기아의 감독으로와서는 이종범을 은퇴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러서 나는 더 안좋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저런 사건들에 의해 야구는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심판매수 사건, 선수들의 범죄행위 가담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야구 리그 자체가 실력이 하향되는 재미없는 판이 되었다고 느꼈다. 한국 야구의 수준은 왜 점점 낮아질까 하는 원론적인 물음이 항상 남아있었다. 


 몇 년 뒤 우연히, 선동열 야구학이라는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 나는 천재형 투수가 무슨 야구학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가운데로 던지면 들어갑니다'라고 쓰여있는 가벼운 에세이일거라 생각했다. 대단한 오판이었다. 내 머릿속 이미지의 선동열과, 실제 선동열은 완벽하게 반대의 인물이었다. 

 

'타선이 점수를 내줬다면 내가 승리투수가 되지 않았을까'
'수비가 좀 도와줬다면 나도 0점으로 막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소주 한 병을 들이켠 뒤 잠들었다.  

 어느날 저녁 교보문고에서 책을 샀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길에서, 집에서 읽었다. 술술 읽혔다. 정말 하루만에 다 읽었다. <야구교과서>로 꽤 많은 시리즈 포스팅을 썼음에도 생소한 단어와 개념도 많았는데 정말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다. 구성도 알차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야구버전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는 듯 했다. 투수와 타자라는 두 생명체가 서로 이기기 위해 진화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선동열 감독은 현대 야구사를 관통하는 인물답게, 과거와 현대 야구를 비교해가며 투수와 타자의 진화과정을 재미있게 풀어주었다.

 

 투수는 타자를 압도하기 위해 직구의 구속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수비시프트를 통해 땅볼을 유도한다. 그럼 타자는 수비시프트에 걸리지 않기 위해, 땅볼을 피하기 위해 스윙 궤적을 어퍼스윙으로 바꾼다. 볼을 띄우기 위해 치기 시작하는 것, 다시 거기에 대응해서 투수는 타자의 타구 판단을 방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한다. 이런식으로 이야기는 투수와 타자의 진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데이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차근차근 단계별로 설명한다.   

 

 사실 그냥 천재 투수 선출 야구감독으로 별거 안하는 역할인줄 알았는데 그는 상상이상으로 야구를 사랑했고, 노력했고, 공부해 왔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선동열 감독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후배를 생각하는 어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후배들을 잘못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공부해야 했다.



아.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해태 김응용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다. 선동렬, 이종범이 일본리그로 떠난 후 해태 타이거즈는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투-타에서 활약하던 두 인물이 빠지자 팀이 어려워진 것이다. 저 말은 한동안 관용어구가 되어 중요한 사람들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 쓰이게 된다. 선동열 감독이 현장을 떠난지 꽤 오래다. 야구가 재미 없다! 바라던 MLB 연수도 잘 다녀와서 다시 국내 지도자로 복귀해서 데이터가 접목된 야구를 KBO에도 자리잡게 해주길. 그래서 KBO가 다시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지길 바라 본다. 

 

끗- 

 

아! 책 재밌다. 야구팬이라면 꼭 사서 읽자. 더 재미있게 야구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