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것에 대해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것에 대해 

 

오늘은 잡생각이 많다. 주말에 출근해서일까.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했다.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걷기로 했다. 걷는 도중 많은 생각을 했다. 

 

 보통 생각을 하면 기록하진 않는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뭘 써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생각도 기록이 된듯하다. 

 

 하여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지하철역 앞 과일가게를 지나면서 지난해가 생각났다. 그때도 넋 놓다 한 정거장을 지나쳐 이 과일가게 앞을 지나쳤는데, 당시 맛있는 최리 1바구니 4,000원이라고 상자 쪼가리에 손수 매직으로 작성한 광고판이 인상 깊었다.  

 

'최리' 웃겼다. 

 

 동네 개천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천이 깨끗했다. 물고기도 제법 많고, 철새들도 보였다. 그리고 날이 좋은지 큰 돌 위에 올라와서 일광욕을 즐기는 거북이도 봤다. 웬 거북이? 

 

 

 

거북이. 웃겼다. 

 

 다리를 건너가게 의자에서 멋있게 담배를 피우며 핸드폰 액정을 거울삼아 앞머리를 고치는 식당 점원을 보았다. 

 

멋있게 담배 피우기. 웃겼다. 

 

 갑자기 그 모습에 빠져 멋있게 담배 피우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상당한 애연가였다. 금연 5년 차에 돌입하면서 가끔 담배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담배를 멋있게 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자기가 상상하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떻게 피워도 아저씨 같거나, 양아치 같거나, 한량같이 보이기 마련이다. 굳이 멋으로 따지자면 한량같이 보이는 게 최선인 거 같다. 

 

 

 

 담배란 건 멋있게 피려고 하면 할수록 웃긴 것 같다. 마치 샤워 직후 자신감에 가득 차 거울을 보는 개그맨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멋있게 피려고 입을 삐쭉 내미는 모습도 웃기고, 멋있게 피려고 담배 끝만 입술로 물어서 대롱대롱 겨우 매달려 있는 모습도 웃기다. 그리고 뭔가 연기를 음미하는 모습도 웃긴 것 같다.

 

 손에 어떻게 거치시키냐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검지와 중지 사이 담배를 잡는 위치에 따라서 재수 없어 보이거나 느끼해 보이거나 건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가장 윗부분에 달랑달랑 걸어 약간 손가락을 낚싯바늘 형태로 만들어 피는 사람을 봤을 땐 구려 보였다. 손가락을 있는 힘껏 쫙 펴서 끝에 걸어서 피는 것도 괴기스러웠다. 그나마 두 번째 마디에 정확하게 담배를 걸었을 경우가 평범해 보인다. 가장 아래 내렸을 때 담배를 입에 가져가면 손이 얼굴을 감싸도록 피는 것은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피게 되면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바라보게 하면 고등학생 시절 몰래 피던 양아치 느낌 또는 건달 느낌이 나고, 손바닥이 나를 향해서 피면 뭔가 어쭙잖아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떠오른 건 '담배 멋있게 피우기'는 '코를 멋있게 파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담배를 멋있게 피운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떠올려봤다. 거의 없었다. 금연하기 전의 내 모습은 거친 건설 현장에서 쉬는 시간이 아까워 급하게 빨아대는 일용직의 흡연이었다. 가끔은 멋있었던 적도 있는 것 같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리'나 '거북이'와 같이 웃겼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서부극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멋있게 기억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수에 찬 눈빛, 고뇌에 빠진듯한 미간이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보니 담배 피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멋있었던 것 보다 그 멋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에서 하는 것 중에 그나마 따라 할 수 있는게 흡연이라 멋있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총을 쏘거나 말을 타거나 카우보이모자를 쓰는게 멋있다고 따라할 순 없었으니까.

 

<지금 봐도 멋있다>

 

 

 이만큼 시시콜콜한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다. 어릴 적엔 하루키에 환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싫어하진 않는다. 그의 에세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보통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흘러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명작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명문이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작가의 일상을 꿰뚫는 통찰력 때문인지, 유명세에서 오는 허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 잡생각의 결정체인 '멋있게 담배 피우기는 어렵다'라는 만약 유명작가가 올렸다면 흥행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온 가지 리뷰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깊이 있게 고민한 것처럼 글을 쓴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지 않을까? 쓰는글에 현실의 직관을 담는 리뷰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끗-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