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푸른 저녁 - 기형도 헌정 시 모음집

 입속의 검은 잎. 언젠가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기형도. 누구에게 추천을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때 자연스럽게 입속의 검은 잎을 선택했다. 


 오늘 포스팅할 책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발간 30주년 기념 헌정 시집인 『어느 푸른 저녁』이다. 2000년 이후 등단한 젊은 시인 88인이 모여 한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주제는 기형도의 시, 시어, 제목, 분위기를 소재로 자기 자신만의 시를 만들어 냈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지났지만 수 많은 젊은 시인들과 독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시인을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느 푸른 저녁』만큼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시인을 편견없이 만나볼 수 있다. 시집에 실려있는 모든 시의 본문에는 작가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다. 그래서 누가 썼는지 보려면 목차로 돌아가서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인이 있으면 그 시인의 다른 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기형도 시인을 모르고 읽는 것보다 그를 알고 그의 시를 한번은 읽어보고 읽은 것을 추천한다. 기형도 시인이 다른 젊은 시인들에게 어떤 영감을 받아서 시를 작성했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기형도 시인

 기형도 시인은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만 28세 젊은나이였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했다. 그는 개성있는 문체로 방송연예기사를 쓰던 기자였다. 


 그의 등단은 마광수 교수 덕분이었다고 한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위였던 마광수 교수는 기형도와의 사이가 틀어질까봐 그의 시를 뽑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시에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데 불우했던 어린시절 때문일 것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어린나이 먼저 하늘로 떠난 누이, 아픈 어머니. 항상 따라다니던 가난. 당시에는 계몽, 노동과 관련된 시들이 쏟아지던 시절이라 그의 시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어린시절 읽었을 땐 중간중간 등장하는 한자와 낯선 표현들 지나치게 어둡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휙 읽고 말았는데 최근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 시집이 없었다. 그가 느낀 상실과 절망, 우울이 시를 통해 내가 가보지 못했던 감정의 영역까지 이끈다. 


 요절하여 과대평가 받는 시인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문학이 잃게 된 대 작가중 한명이란 생각이 든다. 


 아직도 시는 어렵다. 언젠가 만난 시인은 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제고 시가 조금 쉬워지는 날이 오길 바라 본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