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폭설! 눈에 대한 추억!

  어젯밤 긴급 재난 문자가 오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눈이 안와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출근 후 갑자기 하늘에서 하얀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군생활을 강원도에서 해서 그런가 눈이 그닥 반갑지 않다. 군생활 전에도 내릴땐 좋았지만, 내리고 난 후의 그 지저분함을 나는 싫어했다. 세상의 질척질척하고 더러운 것을 눈은 녹아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때문일까. 어쨋든 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과 지금 내가 눈을 대하는 태도는 꽤 달라졌다.



#어린시절

어린시절에는 해병대산이라고 불리는 금호동과 약수동사이에 있는 야산 근처에서 눈이오면 썰매를 타고 놀기도 했다. 



동네가 죄다 언덕이라 비닐포대만 하나 구하면 눈썰매장이 따로 없었다. 


가장 좋은 곳은 친구집 앞 골목 언덕이였는데 경사가 한 40도정도 되는 2번의 내리막과 끝무렵에는 10칸정도의 낮은 계단이 다른 골목과 그 골목을 연결해주고 있었다. 


하여간 동네 친구들은 그 골목을 좋아했다. 적당히 속도도 붙고 완급조절도 되어서 겁이 많은 아이들은 1단계 언덕에서 멈췄고, 좀 더 용기있는 아이들은 2단계 언덕을 넘어 폭이 좁은 계단까지 도전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좁은 폭의 계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용기의 상징이었으므로 누구나 도전했다. 


눈이 오는날엔 비닐포대가 얼마나 미끄러웠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청소년기 

약수역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장충단공원에 갈일이 꽤 있었다. 당시에는 그곳에 롤러스케이트장, 베드민턴 등 체육활동을 하기 좋은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여름엔 동국대 가는 언덕쯤 있던 코끼리 수영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시 그 시절에 겨울로 돌아가 지금은 복원되어 분수대가 그대로 있는진 모르겠는데, 그곳엔 제법 큰 분수대가 있었다. 오늘 처럼 하얗게 눈이 오는날에는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곤 했다. 어느날 겨울밤 아무도 눈을 밟지 않은 그 분수대에 들어가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 발자국을 남기고 노는 와중에 얼어있는 물을 보지 못하고 그만 크게 넘어졌다. 거의 1미터 가량 두다리가 떳던것 같은데 엉덩이로 착지하여 엉치뼈가 다쳤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서는 눈에 좋은 기억이 딱히 없다. 남들이 스키장에 좋다고 다닐때 나는 그 추운데 위험한걸 왜 하고 있냐며 나무랐다. 어린시절에 2단언덕과 계단을 정복하던 내 모습은 사라진 것이다. 


어쨋든 나이가 들고 눈이 오면 오는건 좋은데 질척거리는게 싫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며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근무를 하던 화천은 정말 눈이 많이 왔다.


 겨울의 강원도는 추위도 추위지만, 눈이 정말로 많이 왔다. 일과중엔 괜찮았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일했고 눈과는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밤새 쌓인 눈은 조기기상을 해서 재설작업을 해야 했으며, 끔찍하게도 눈은 금요일 밤에 유독 많이 왔다. 



금요일 밤에 눈이 오면 토요일 아침부터 그날은 제설작업에 들어가게 되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토요일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20대 초반에는 눈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대를 지나 30대에도 눈은 쭉 반갑진 않았다. 유독 눈이오는 날은 비가 오는날 보다 침울했던 것 같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이제는 눈이오면 단독주택에 살기 때문에 집앞 눈을 치워야하고, 출근길 대중교통에 사람이 많겠거니하는 걱정을 한다. 


 오늘 아침 카페에서 회의를 하며 창밖으로 눈내리는것을 바라보다 '블로그에 눈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오늘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뒤돌아 보니 오늘 바라본 눈은 평안했다. 


아마 업무시간에 카페에서 여유롭게 눈을 봐서 그런 것 같다. 

오늘 같은 기분으로 바라본다면 눈이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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