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마라톤 도전기 #3 나의 21km 달리기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했다. 

갑작스럽게 42.195km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최근 신변의 변화도 생겼고, 뭔가 이 나이를 먹도록 특별한일이 생기지 않아 인생이 지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막연하고도 긴 42km를 쉬지않고 달리다보면 무언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뭔가 특별한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21km에 대해


 뛰어야겠다. 금요일 저녁에 야근을 하고 집에 가면서 든 생각이다. 기분은 우울했고, 뭐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남들 다 노는 금요일에 야근을 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목표는 6월 풀코스였다. (당시까지만해도... 지금은 아니다.)


 처음엔 21Km를 꼭 뛰어야겠단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나는 갈 수 있을 만큼 뛰어갔다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11시가 되었을 무렵 출발했다. 동네 개천은 한산했고 선선한 밤의 봄 바람이 기분 좋았다. 금요일까지 쌓였던 일상의 더러운것들이 좀 씻기는 듯 했다. 



 5-6km 지점을 지났을때 까지도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다. 지난번 10km를 달렸을때는 얕은 숨을 많이 쉬어서 갈비뼈가 아팠는데 호흡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보통처럼 10km를 뛰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 쯤 돌아가는게 맞았다. 하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리 상태도 좋았고 그닥 힘들지도 않았으며, 다음날 토요일이라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21km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다가 안되면 택시를 타고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9-10km 구간까지도 전혀 힘든것은 없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점점 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적막한 강변을 혼자 뛰고 있노라니 뭔가 센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10km 반환지점을 돌았다. 요즘은 공원에 식수대가 많이 있어 다행이었다. 중간중간 수분공급을 해주면서 뛰었다.


 12km쯤 되었을때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로 식혀가며 뛰었다. 


15km쯤 뛰었을땐 다리근육들이 굳는것을 느꼈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뛰기위해 노력했다. 


17km를 지났을때 내가 왜 뛰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뛴다고 달라지는게 뭐 있겠는가. 그리고 시간이 1시가 넘어가자 길이 너무 무서웠다. 길은 무섭고 나는 힘들고 갈길은 멀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조금 슬픈마음으로 좀 더 뛰었다. 


 18km가 지날 무렵부터는 조금 걷다 뛰다를 반복했는데 너무 허기졌기 때문이다. 주변에 편의점이 보이면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계속 배고픔을 참고 뛰고 뛰었다. 18km이후로는 한걸음 한걸음이 위기였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출발지점을 지났음에도 21km가 되지 않았다. 조금 부족했다. 또 욕이 절로 나왔다. 나는 최대한 21km가 동네 편의점에서 끝나도록 길이를 조절해서 뛰었다. 



 

 눈앞에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김밥, 컵라면, 콜라, 피자, 소세지를 구매하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눈깜짝할사이 모든 음식을 치웠다. 


 21km를 완주했다는 성취감보다 완벽하게 탈진한 몸, 그리고 인생 최대의 허기짐을 크게 느꼈다. 이래서 장거리를 뛸때는 젤리형태의 간식을 먹는건가보다. 


 그 많은 음식을 다 먹고도 배가고팠다. 포도젤리 두봉지와 이온음료 한병을 사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기록은 2시간 13분 평균 페이스는 km당 6분 22초. 




 21km는 뛸만하다. 하지만 엄청나게 힘들다. 42.195km가 얼마나 나에게 먼 거리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가 말하길, 위험하니 혼자서 너무 긴 거리는 뛰지 말고, 차라리 단거리에서 기록을 단축하는 주법으로 연습을 하라고 조언해줬다.


 21km를 뛰던 새벽 내가 당이 떨어져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20-30분은 방치되어 있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