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놀랍다. 얼마 전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한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작가 추천을 받기 시작했다.
그 중 독특한 이력의 작가에게 나는 끌렸는데,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각종 문학상의 수상작들을 분석해 그 특징들을 살려 글을 써 온갖 상들을 휩쓸었다는 작가다. 그 작가의 이름은 장강명, 오늘 리뷰할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의 저자다.
장강명씨는 동아일보의 기자로 이력을 시작해 11년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기자들의 특징답게 글이 논리적이며 문체가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다. 소싯적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단편을 올린 경력이 있고 대학에선 월간 SF웹진을 창간하기도 했다.
이번 책은 그냥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교보에서 검색한 다음 구매했다. 단순히 제목이 제일 끌려서 샀는데 가장 최신작이었다. 단편집인지도 몰랐는데 단편집이다.
나는 단편집을 좋아한다.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단편이 정말 짧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장편 못지않은 긴 여운을 주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단편집은 실패해도 그 손실이 작고, 성공했을 때 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은 10개의 단편이 모여있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 사랑을 막 시작하는 연인들에게서 나오는 호르몬을 지속시켜주는 약이 판매된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결국 약을 안 먹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2.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 나치 전범이 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을 하고 재판을 받는다. 어떤 과정에서 그는 유대인들이 통치하는 알래스카에 감금되고 그곳에서 체험공유장치라는 기계를 이용해 수용소 피해자와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된다.
3.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 각각 소소한 초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
4. 당신은 뜨거운 별에
- 한 기업의 지원으로 금성 연구 목적으로 금성에 갇혀 육체를 통제당한 연구원이 등장한다. 기업에서는 금성에서 로봇으로 다양한 쇼를 하며 광고 이익을 얻는데, 한 연구원이 자신의 딸에게 비밀리에 구조신호를 보낸다.
5. 센서스 코무니스
- 뇌파를 읽어 여론조사를 하는 '센기획' 여론조사가 무서운 이유가 잘 나와 있다.
6. 아스타틴
- 지구인을 뛰어넘은 선구자(초인)이 등장하고 그는 지구를 넘어 화성을 테라포밍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기억을 전승해가며 영원을 꿈꾼다.
7.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여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이야기
8. 알골
- 지구인을 뛰어넘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한자리에 뭉쳤을 때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모종의 사건 이후 그들이 화성으로 숨어버리고 작가인 주인공은 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화성으로 간다.
9.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 마지막 인류와 인간성을 깨닫게 된 AI의 몰락
10. 데이터 시대의 사랑
- 모든 것이 데이터로 분석되는 시대 온갖 데이터 분석으로 자신들의 결말을 알게 된 연인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랑의 의미
대부분의 설정은 익숙한 듯하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새롭다. 저 10개 중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1.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2.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10. 데이터 시대의 사랑이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SF소설의 특징인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가 강하기보다는, SF라는 큰 틀의 설정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얼마 전 읽었던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SF소설이지만 마치 고전 인문학을 읽은 것 같은...? 휴머니즘을 건드는 무언가가 있다.
작가는 앞서 설명한 기자에 SF소설을 좋아했고 원체 글을 쉽게 잘쓰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제법 복잡한 설명도 한 문단으로 쉽게 해결하고 어리둥절한 사건도 이야기의 끝에선 모든게 이해된다.
SF를 좋아하는 사람, 신선한 스토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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