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소리 #44 블로그, 꾸준히 글쓰기, 소통, 위선과 위악, 유사연애

 오랜만에 일기 포스팅이다. 곧 포스팅 갯수 1000개를 돌파한다. 매일매일 어떤 상황이던지간에 1일 1천자 내외의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했다. 내 기억에는 1일 1포스팅을 선언한 뒤로 못 지킨 날이 없었다. 그만큼 강박에 가까운 글쓰기를 해왔다.

 

 

 맘에 안드는 조악한 글도 많고,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부끄러운 글도 많다. 오래된 포스팅부터 쭉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고뇌와 발전된 부분 같은 것들이 보여서 좋으면서도 싫다.

 

 본래는 1천 포스팅 달성기념으로 블로그의 방향성에 대해 좀 끄적거려 볼까 했는데 일기를 쓴 김에 나름 생각한걸 이것저것 써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시읽기

 나는 글을 쓰고 거의 다시 읽지 않는다. 방문자가 '허. 이 사람 어쩐일로다가 글이 재밌지' 하는 글을 진짜 고심하고 고심하고 고심해서 쓴 글이다. 그런 글 조차도 발행을 누르면 거의 다시 읽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론 읽고 수정하는 탈고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콘텐츠 줄이기

 사실 이 블로그는 내 대뇌피질 같은 곳이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마구자비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깊이가 없다. 물론 나란 사람 자체도 깊이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 크게 상관은 없긴한데.. (나는 잔잔바리로 넓은 사람이고 싶다.)

 

 

 나와는 정말 잘 맞는 상태이지만 나도 뭔가 잘하는거 하나쯤은 생겨보고 싶단 마음에 콘텐츠를 최소화하여 전문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글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했다.  주력으로는 책, 영화, 여행 세가지를 남기고 싶다.  

 

#꾸준히 쓰기

 1일 1포스팅을 시작한게 18년도 언제부터 인거 같다. 그때는 1일 1포스팅은 아니지만 갯수는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루에 2-3개 포스팅한 날도 있는거 보면 오기로 포스팅을 올렸다. 그때의 나. 지금은 꼬박꼬박 1일 1포스팅이다. 

 

 얼마 전 '일간 이슬아' 라는 구독형 1일 1에세이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정말 1일 1포스팅도 어려운데 1일 1에세이라니, 그것도 돈을 받고 3년이나?! 가끔 이슬아 작가의 글을 짤막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통찰에 놀라곤 했다. 그런 글을 매일 써냈다는게 정말 대단하다.  

 

 꾸준히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백지를 채워 나가는 막막한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생각을 해야하고, 뭔가를 남겨야 하니까. 다른 글을 짜집기 하더라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짜집기는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익숙해질법도 한데, 아직도 티스토리 에디터만 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1000개 포스팅을 넘기고 나면 1일 1포스팅은 사실상 힘들어 질 것 같다. 다만 좀 더 양질의 좋은 글을 쓰도록 앞으로도 애써보겠다. 

 

#구독 

 티스토리에 구독이라는 기능이 생기면서 다른 블로거가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뭐라도 댓글을 달아주는 건 고맙지만 답방을 와달라고 요청하는 글에 상대방의 블로그에 가보거나 맞구독을 하진 않고 있다. (물론 너무 내 취향을 저격하는 블로그는 오지말래도 몰래가서 보고 온다.)

 내 글이 오픈된 것 만으로도 큰 소통을 하고 있는거 아닌가.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소통도 부족해서 난리인데 온라인에서 만큼은 내멋대로 편하게 지내고 살고싶다.

 

#위선과 위악 

 얼마 전 건방지게도 글감을 달라고 소리친적 있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온 패기 넘치는 산골마을 우물안 서생처럼. (소리치고 보니 한양엔 잘난 선비놈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받은 글감은, 나 자신에 대해, 위선과 위악, 그리고 유사연애다. 나 자신에 대해 쓰기에는 스스로가 아직 너무 미약하고 보잘 것 없어 내 대뇌피질격인 이 블로그로 갈음하기로 했다. 

 

 위선과 위악은 좋은 주제다(쓰기엔 별론거 같다). 인생에서 꼭 필요하기도 하다. 위선과 위악은 !@$#%#@$%^하던지간에 결국에는 '위'가 벗겨지기 마련인 것 같다. 그래서 종극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선한지 악한지는 너무 극명하게 들어난다. 종극에서 '위'가 없어 진다면 위선을 행한사람은 그 선행보다 더 크게 악해보일 것이고, 위악을 행한사람은 그 악행만큼보다 더 선해보이기 마련아닐까.

 나도 위선, 위악을 부리고 있나 곰곰히 생각해봤다. 구체적인 예시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타인관계에서 내 모든 것이 위선이고, 위악일 수 있겠단 생각이 번뜩 들었다. 결국 내 의도가 중요한게 아니라,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단 생각. 근데 웃기는 짜장같은 소리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결국 내가 중심이다. 그래서 내가 위선을 떨었는지, 위악을 부렸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위선자다. ㅠㅠ..

 

 위선과 위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내 통찰과 사유가 깊어질 때 다루면 재밌을 것 같다. 

 

+ '위'가 벗겨지는 종극이 오지 않는다면 행위자의 의도인 위선-위악과는 상관없이 그냥 선-악이 되어버릴 것이다. '위'가 벗겨진다는 시점이 와야 위선과 위악에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직장생활을 하던 대학동기의 살가운 사회생활 가면을 본 다른 동기는 그 친구의 인위적인 선한 모습에 '위선자놈'이라고 비난했는데 2-3년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던 친구가 나에게 고백하길 스스로도 싫지만 이제는 이게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선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유사연애

 유사연애. 또 다른 친구가 제안해준 글의 주제다.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대충 뜻 만 봐서는 내 욕하는거 같았는데. 기존에 정립된 뜻이 있었다.

 

 덕질을 넘어서 덕질 대상과 연애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보게된 아이돌 팬 사인회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적이 있다. 사인을 받으러 온 여성 팬에게 남자친구인 것 마냥 끼를 부리는 아이돌의 영상이었다.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러니 안빠져 끌끌..' 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유사연애를 거는 것이 하나의 생존수단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음악을 잘하는건 어떨까?)

 

 사실 친구의 뜻은 저런 것과는 조금 다른 뜻으로 말했던 것 같다. 추측컨데 이성과의 관계에서 애매하게 구는 내 태도를 이야기한 것 같다.(비판한게 아닐까?)

 

 나는 그 친구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언제나 신나게 이야기 하곤 하는데 그 이야기의 흐름은 호감의 대상이 누구인지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내 나이도 나이 이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과

괜히 마음의 모난 부분이 들어나는 두려움

그리고 이래서 안될거야,

저래서 안될거야 하면서 겁먹지만

 

걜 좋아하고 있어

 

or

 

하지만 난 너무 소중해

 

라는 헛소리. 이걸 매번 받아주기 지쳐서 유사연애라는 단어를 던졌을 것 같다.

너 자신을 돌아 보라고. 후후..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