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날.

그냥 그런 날이다.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넷플릭스 켜놓고 1시가 다 되어갈 무렵 콧잔등에 핸드폰이 떨어져 고통 속에 잠이 들었다. 코가 무너지는가 싶었는데 수면의 욕구가 고통을 이겼다. 


 새벽에 눈뜬 것치고 개운했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자 두통이 별안간 몰아쳤다. 전날 턱걸이를 잘못해서 그런가? 어깨도 엄.청.나.게. 결렸다. 


 찬물로 한바탕 샤워를 했다. 아침 일찍 채비를 한다. 얼마 전 자른 머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 옆머리는 왜 이렇게 뜨는지 원. 길러서 파마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도 3개월째 매달 하는 듯. 


 일찍 집을 나왔다. 청량한 초봄 날씨가 기분이 좋다. 서늘한 듯 따듯한듯 코끝을 스치는 이런 날씨를 좋아한다. 지하철로 가는길 꽉 끼는 정장을 입은 사람이 걸으며 흡연을 한다.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피해 보지만 담배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이제 역해질 만도 한데 담배는 아직도 그립다. 다시 펴볼까 고민해보지만 역시 금연을 중단하기는 아깝다. 지하철에 올라탄다. 최근에는 무엇인가를 쓰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오늘 이 일기도 사실 논리와 정보전달을 위한 글쓰기에 지쳐서 쓰는 일기다. 이상한 날이다. 지하철은 한산했고 승강장에 내려가자 바로 전철이 들어왔다. 


 전철을 타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노래를 듣는 건 소소하게 즐겁다. 오늘은 가수 거미의 신곡과 백예린의 신곡이 나왔다. 두 곡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 흥미로웠다. 


 멍하니 있는데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아뿔싸. 내릴역을 지나쳤다. 


한강이 참 파랬다. 


 다음 역에 내려 다시 반대편 전차를 타고 본래의 목적지로 갔다. 오늘은 이러려고 눈이 일찍 떠졌나보다. 


반대편 한강은 빛이 났다. 


 눈부신 아침이다. 종종 이렇게 한 정거장 지나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을 했다. 아침에 한강을 보니 아침의 찌뿌둥함이 날아갔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근처에 있을법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인스타그램에 한강사진을 업로드를 한다. 바보같다.


 강을 왕복했지만, 아직도 출근 시간은 한참 남았다. 일부러 빙빙 돌아서 회사로 간다. 회사 가는 길은 조금만 돌아간다면 미로 같은 골목길로 갈 수 있다. 가도 가도 헷갈리는 곳들 지나오면서 큰 길이 나오면 뭔가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유독 출근길이 길어서 더욱 그렇다. 뜻밖에 업무에 집중도 잘 된다. 회사 앞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사서 마신다. 


 커피는 마셔도 마셔도 부족하다. 하루에 5-6잔은 마시는 것 같다. 다 먹고 얼음만 남은 커피잔에서 얼음을 입에 쏟아내 아작아작 씹어먹는다. 속이 잠시나마 뚫린다. 


 퇴근 무렵. 야근하려고 했으나 오늘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나선다. 수술은 내일이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마주하는 건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젊으신 편인데도 그렇다. 


 미세먼지가 제법 있다. 그래도 달은 밝다. 유독 멀어 보이는 달은 가득한 듯 만 듯 멀리 있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환자와 아저씨가 함께 탄다. 아저씨는 누가 죽었나. 살았나 우네. 하고 다른 누군가의 눈물을 보고 배를 긁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누군가의 생사에 배를 긁으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진 말아야겠다. 


 아버지는 환자복을 입고 있으신 것만으로도 수척해진 것처럼 보였다. 수술은 내일 점심쯤 이라고 한다. 큰일은 없을 거라 생각된다. 


 집에 돌아가면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한다.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자고 싶다. 쭉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래본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