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조커 ‘나의 죽음이 삶보다 가취 있기를’

 소름 돋았다. 영화를 보고 나는 심신의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평소 영화에 몰입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너무 과하게 몰입되었다. 아니. 몰입 당했다.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 때문이 아닌,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누가 비정상의 조커에게 이렇게 까지 빠져들게 연기할 수 있을까..! 

 

 

 

 극장을 나오며 나는 "저 심리상담을 좀 받고 와야할 것 같은데요"라는 농담을 꺼냈다. 배트맨을 좋아하는 나에게 조커는 꽤 의미가 있는 빌런이다. 배트맨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는 조커에 이런 스토리를 붙여 놓으면 이제 어떻게 조커를 어떻게 배트맨의 반대에 서있는 악당으로만 받아드려야 하나 걱정이다. 

 

 줄거리는 조커가 조커로 탄생하기 까지의 과정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줄거리_초반 스포있음

 고담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대로 일하며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플렉이 주인공이다. 그는 가난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희망하나로 살고 있다.

 

 

 아서는 뇌손상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질환을 겪고있다. 그래서 상황과 상관없이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발작적으로 웃고 만다. 

 

 

 80년대 고담은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고, 시의 재정은 바닥나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키기 전까지 상황에 빠진다. 도시의 부의 상징인 토마스웨인은 시장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  

 아서플렉의 어머니는 웨인가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녀는 웨인에게 매일 편지를 보내는데 착한 토마스 웨인이 자신을 모른척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광대로 일하는 아서플렉의 일상은 처절하다. 공연은 실패하기 일수다. 업체의 홍보판을 동네 비행청소년들에게 뺏겨 자신의 월급에서 물어주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한다. 

 

 

 회사에서 쫓겨난 어느날 광대분장을 하고 지하철타고 집에 가는 아서 플렉. 화이트칼라 셋이 여성을 희롱하는 장면을 본다. 그는 모른척 하려고 하지만 웃음이 발작처럼 터져나오고 그들은 아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분노한 아서는 품에 들고 있던 총을 그들에게 쏴 전부 죽인다. 이 사건은 기득권과 부자들을 향한 가난한 자의 저항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사람들은 광대 마스크를 쓰고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반면 자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인 아서 플렉은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조커, 혼돈을 주는 영화

 영화 조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 중반부에 정신병원에 갇혀 머리를 박는 조커의 모습이 언듯 지나간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정신병원 상담사에게 우스운 농담이 생각나서 웃는다며 그녀를 죽이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커의 모습이 나온다. 이 상담 장면하나로 영화는 시점을 오묘하게 흐린다. 영화의 흐름 순서대로 볼 수 있지만 중간의 머리를 박는 장면 - 과거회상과 망상 - 탈출 순으로 이야기거나, 아니면 마지막 탈출 씬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정신병원에 갇힌 아서플렉의 망상이라는 해석 또한 할 수 있다.  

 

 사회 문제도 꽤나 다루고 있다. 시 예산의 감축으로 상담이 필요한 아서가 더 이상 상담을 받지 못하는 장면, 청소부의 파업으로 슈퍼쥐가 탄생 했다는 뉴스, 사람들이 언제나 화가있고 폭력적인 모습 등 다양한 사회문제는 현재의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인상깊은 장면들이 많다. 우선 첫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아서플렉의 모습에서 찌질하던 그는 광대분장을하고 첫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겁먹고 도망치다가 공원의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거울을 본 그는 갑작스럽게 춤을 춘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에 춤을 춘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후에도 춤추는 장면들이 많다. 

 

 

 아서플렉은 살인 이후 광대분장을 하면 엄청나게 자신감있고 신나고 직설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내 기억에 그는 광대 분장중에는 웃음발작을 일으키지 않는다. 진심으로 웃는다. 춤추는 장면은 아서가 자신의 본모습에서 벗어나 조커가 되어 느끼는 자유, 그리고 희열을 상징하는 듯 하다. 

 

 이 차이는 아래 계단씬에서도 잘 표현된다. 아서플락의 계단씬은 한없이 힘들고 우울하고 올라가야할 고난의 길이지만, 조커의 계단은 빠르고 즐겁게 춤추고 가볍게 내려와 내달릴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아서의 농담노트에 적혀있는 '나의 삶이 죽음보다 가취 있기를' 이라는 문장 또한 큰 의미가 있다.  “I just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  make sense를 cents로 말바꿈하여 발음은 유사하지만 뜻은 다르게 표현했다. 직역하면 "내 죽음이 삶보다 더 많은 센트(돈)을 만들길 바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 표현은 '나의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가치를 가취로 단순하게 말바꿈 한 것으로 나온다. 사실 이것도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웠을 듯. 이 문장에서 가난에 찌들어 비루한 삶을 살아가며 차라리 죽음을 원하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아서플렉의 내면이 잘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아서의 살인에는 기준이 있다. 그에게 무례하고 예의없이 구는 사람들을 죽인다. 광대회사의 난쟁이를 살려줬고, 자신의 망상속 여인을 살려준 걸(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아서가 집에 무단침입 했을때 정중하게 나가줄 것을 부탁한다.) 보면 그렇다. 자신의 조금이라도 무시하거나 자존감을 건든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경찰차에 호송되던 중 아서는 경찰차에서 광대 마스크 폭도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다. 그가 바라는 것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폭도들에 의해 구조되고 깨어나 자신의 피로 미소를 그리며 완벽하게 조커로 각성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지인들에게는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다. 15세 관람가의 이 영화는 재미있고 대단한 영화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온갖 사회적 문제와 한명의 불행한 인간이 몰락해 가는 이야기는 추천하기에는 너무나 우울하다. 15세인 관람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들은  '조커'만 연기하면 다들 연기에 신이 들렸다고 표현한다. 잭 니콜슨이 그랬고, 히스레저가 그랬고, 자레드 레토 또한 역대급 연기를 했다고 한다. 이번 영화로 호아킨 피닉스는 또 하나의 신들린 조커를 만들어냈다. 다음 조커는 누가 될지 큰 기대가 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