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설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외면했던 과거의 비밀스러운 사건들

언젠가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인상 깊은 서평을 읽었다. 책띠(책을 감싸고 있는 홍보물)에 적힌 문구였다. 

 

"앞으로 나는 도대체 무얼 쓸 수 있을까. 이 한 권의 소설집 안에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미 다 들어 있는데." 

 

 백수린 작가의 서평이었다. 백수린 작가가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근래 보았던 서평들 중에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이 책을 삿냐면 그것은 또 아니다. 나는 신간코너에 위치한 처음들어보는 작가의 책을 경계한다. 그리고 너무 거창한 서평의 책은 기대감을 높이기 때문에 경계한다. 그런 이유로 당시에는 이 책을 지나쳤다. (대신 고른게 두 도시 이야기)

 

 그렇게 시간이 몇 달 흐르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손에 넣었다. 독서동아리의 이벤트로 서로 책을 교환했는데 나는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내가 준비한 책은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라 준비했는데, 생각해보니 연말연시에 적절한 책은 또 아닌거 같다. 

 

 

 다시 오늘 리뷰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돌아와서. 선물을 받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장편보다 단편을 많이 읽게된다. 깊이있는 단편이 주는 긴 여운이 좋다. 08년에 출시된 이 책은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영하작가의 팟캐스트에서 듣고 읽은 사람들도 많을거라 생각된다. 나는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작가는 앤드루 포터. 72년생의 젊은 미국의 작가다. 데뷔작으로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고 지금은 트리니티 대학교 문창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후 장편 <어떤날들>을 출간했다. (나중에 읽어 볼 생각이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화자의 과거의 어느 순간을 회상한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상'에 대해 담담하게 회상하는데 그 어떤 일상은 일반적인 사건은 아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한번쯤은 겪을 법한 그런 이상한 이야기들. 

 

 보통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은 '과거에 이런일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는 서사 구조를 갖게 되는데 이 단편집은 화자의 현재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다. 그냥 과거를 회상하고 마는 것이다. 현재의 화자에 대한 묘사가 없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었다. 이런 의도를 갖고 글을 작성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를 밝히지 않고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를 통해 독자는 스스로 외면하고 있던 유사한 비밀들을 함께 회상하게 된다.

 

 각 단편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죄책감과 상실,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를 작가는 회상이라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나는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대부분이 어린시절을 회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나온 가족의 형태, 가족의 부재, 가족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을 떠오르게 했다. 

 

 책은 가볍게 읽고자 하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고, 무겁게 읽으려면 무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내년에 독서가 목표라면 이 책을 시작으로 해도 무난할 것 같다. 책은 문학동네에서, 옮긴이는 김이선, 가격은 13,800원. 

 

끗-